고추의 역사
고추는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로, 온대 지방에서는 한해살이로 자라지만 원산지인 열대 지방에서는 관목처럼 자랍니다. 열매의 길이는 보통 6~9cm 정도이며, 잎은 길고 둥근 형태에 끝이 뾰족하고 여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웁니다. 고추의 열매는 처음에는 짙은 녹색이지만, 익어가면서 점점 붉게 변합니다. 이 열매의 껍질과 씨에는 캅사이신이 들어 있어 매운맛을 내는데요. 잎은 주로 무침 요리에 사용되고, 열매는 익혀서 양념으로 쓰이거나 생으로 먹기도 합니다. 특히 익힌 열매를 빻아 고춧가루로 만들어 다양한 음식에 활용하는데, 한국에서는 고춧가루가 마늘과 함께 가장 널리 사용되는 향신료입니다. 김치에 꼭 들어가는 재료이기도 하죠. 고추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한 채소로, 특히 비타민 C 함량은 사과의 10배가 넘습니다. 두세 개만 먹어도 일일 권장량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예요. 이외에도 노화 방지, 항암 효과, 피로 해소, 고혈압 예방에 도움을 주는 영양소가 많아 건강에 이로운 채소이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고추를 처음 식용으로 사용한 것은 약 9,000년 전 멕시코 원주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는데요, 그의 일기에는 고추를 후추보다 더 훌륭한 향신료로 표현한 구절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고추의 한자 이름은 먹으면 매워서 괴롭다는 뜻의 苦椒(고초)였으며, 이 이름이 점차 고추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양념인 고추장은 중국에서 고추장(苦椒酱)이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고추장이라는 명칭은 한국식 발음으로 사용되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부 중국인들에게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식당에서 고추장을 주문할 때는 辣椒酱(라쟈오쟝)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최근에는 고추장이라는 단어도 점차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어 종종 알아듣기도 합니다. 영어에서는 chili pepper라고 부르는데, 후추를 뜻하는 pepper에서 유래했습니다. pepper라는 단어가 후추, 고추, 파프리카 모두에 사용되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도록 후추는 black pepper, 고추는 chili pepper, 파프리카는 bell pepper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경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으며, 이를 주장한 학자 중 한양대의 이성우가 있습니다. 그는 1978년, 고추가 콜럼버스 이후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다고 설명했는데요, 당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일본에서 건너온 왜 개자에 독이 있다는 기록이 고추를 지칭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왜 개자가 고추가 아닌 다른 외래종 식물일 수도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한 고추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조선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왜군이 고추를 최루탄처럼 사용하거나 독살용으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왕의 식탁에 오를 정도로 고추가 빠르게 보급되었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유전적 특성
고추는 유전적 특성상, 서로 다른 고추를 교배하면 1대째 부모 고추의 특성을 반반씩 물려받은 2대째 종자가 나오고, 이 2대째 종자를 다시 교배하면 또 다른 특성을 가진 3대째 고추가 탄생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교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고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보는 가늘고 긴 고추뿐만 아니라, 피망이나 방울토마토 같은 모습의 고추도 있고, 매운맛부터 은은한 단맛까지 각양각색의 맛을 지닌 고추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이고추는 매운맛이 거의 없어 피망과 비슷한 식감을 가지고 있어요. 피망과 고추의 특성을 합친 재배종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과 맛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름에는 오이가 들어가 있지만, 사실 오이와는 관련이 없는 고추 품종이죠. 또, 멕시코가 원산지인 피터 고추라는 특이한 모양의 고추도 있는데, 멕시코에서는 주로 관상용으로 키우지만 한국에서는 술안주로 즐기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강한 향과 매운맛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하여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다섯 가지 매운 채소, 이른바 오신채를 금하는데요, 고추는 이 금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고추가 뒤늦게 전래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사찰 음식에서는 고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김치를 담글 때도 마늘을 빼고 고추로 맛을 내고, 라면에도 고추를 넣어 맛을 더하곤 합니다. 고추는 매운맛뿐만 아니라 보존성도 높여주는 역할을 해 사찰 음식에서는 빼놓기 어려운 재료가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웰빙 트렌드에 따라 고추를 수경재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방식은 가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고추는 주로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하며, 그 기간 동안 약 10번 정도 농약을 살포하는데요. 농약 잔류가 걱정될 수 있지만, 잔류 농약의 양은 농약 사용 횟수와 꼭 비례하지 않습니다. 이파리 채소와 열매채소의 종류, 그리고 껍질의 재질에 따라 농약이 얼마나 남는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배방법
고추는 재배가 어려운 작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까다로운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재배 기간이 길다는 점입니다. 보통 1월 말에 씨를 뿌려 90일 동안 모종을 키우고, 4월 말에 본밭에 옮겨 심은 뒤 8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여러 차례 수확을 진행합니다. 즉, 봄부터 가을까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과일류를 제외하고 이렇게 긴 재배 기간을 요구하는 작물은 드뭅니다. 만약 열대 지방이라면 몇 년에 걸쳐 키울 수도 있지만, 한국처럼 겨울이 있는 기후에서는 월동이 어려워 수확량이 적은 편입니다. 둘째, 병충해에 약합니다. 고추는 상추나 호박류처럼 손쉽게 재배하기 어려운데요, 병충해에 특히 민감하여 주기적으로 방제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탄저병은 거의 매주 약을 치지 않으면 고추들이 여기저기 썩어가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또한 기온 변화에도 민감해, 여름철에는 고온에 의해 고추가 타거나 익어버리고,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냉해로 인해 고추가 썩기 쉽습니다. 셋째, 수작업이 많이 필요합니다. 고추는 다른 작물들처럼 키가 작아 수확할 때 허리를 숙이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바람에 약해 비닐 끈으로 묶어줘야 하며, 농약 방제로도 제거되지 않는 잡초는 일일이 손으로 뽑아줘야 합니다. 수확할 때도, 모기에 물리며 익은 고추만 골라 따야 하며, 한 번에 모두 익지 않으므로 7~14일 간격으로 여러 차례 수확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가을철에 수확한 빨간 고추는 세척과 건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특히 태양초로 말리려면 햇볕에 널어둬야 해 여름철 소나기나 태풍을 대비해야 하므로 외출도 어려워집니다. 이처럼 정성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고춧가루가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추 농사는 초보 농부나 도시 사람들에게는 풋고추 몇 개를 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는 일반 작물과의 비교에서 오는 어려움이지만, 향신료 중에서는 비교적 손쉬운 편입니다. 사프란이나 고추냉이, 바닐라 같은 고급 향신료는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거든요. 고추는 열대 지역 원산의 관목이지만, 1년생처럼 자라기 때문에 온대나 냉대 지역에서도 재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다로움 때문에 식물계의 개복치로도 불리는 고추는 여전히 향신료 작물로는 뛰어난 수확량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작물입니다.